햇살속에 시한줄(91) 구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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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에 시한줄(91) 구슬비
  • 조경훈
  • 승인 2023.05.31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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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조경훈 시인·한국화가

 

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권오순(權五順·1919~1995) 황해도 해주 출생.

 

 

곱고 아름다운 우리의 말과 글

생각의 맑음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천년전이나 백년전이나 아름다운 우리의 말도 변함이 없다.

이 시가 쓰인 그때는 우리의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일제강점기, 그때 몸도 성하지 않은 소아마비의 소녀가, 독학으로 한글을 알아내고 배운 소녀가, 그 불우함을 견디는 힘으로 시를 쓰게 된 그녀가, 저토록 아름다운 우리말을 썼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그때 은둔생활로 집안 마루턱에 앉아 내리는 비를 보았을 것이다. 싸리잎 위에 내려 반짝이는 빗방울은 보이는 대로 은구슬이다. 거미줄에 매달려 반짝이는 빗방울은 보이는 대로 옥구슬이다.

아픈 내 몸이 비가 오면서 자연과 만나니 온통 반짝이는 구슬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쓰면서 사는 아름다운 말, 송알송알, 조롱조롱, 대롱대롱, 고이고이, 포슬포슬, 솔솔솔 예쁜 말들이 총동원되듯 줄 서 나온다. 어쩌면 그때 그 소녀의 마음은 말의 정부(政府)가 들어 있다는 느낌이다.

이시는 1937년 가톨릭 소년지에 발표되었다. 해방이 된 후 고향 해주에서 단신 월남하였는데 이 시가 자신도 모르게 문교부에서 처음으로 발행하는 음악교과서에 발표되어 많은 어린이들이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노래를 부르며, 옥구슬처럼 예쁜 마음을 갖고 자라났다.

그후 방정환, 윤석중 등과 함께 아동문학 첫 세대로 활동하면서 동시선집 <새벽숲 멧새소리>, <무지개 꿈밭> 등을 발간하였고, 가톨릭에 귀의하여 재속 수녀가 되어 평생을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생을 마쳤다.

 

꽃 바구니에 담아 / 창가에 / 걸어두고 싶다 /

수정 쟁반에 / 또르르 / 굴려보고 싶다 /

옥 항아리에 꽂으면 / 하얀 방울꽃 내음 / 퐁퐁 솟겠다//

-<봄 아침 멧새 소리>

글·그림 조경훈 시인·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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