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필보/ 눈 한 번 흘긴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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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필보/ 눈 한 번 흘긴 죄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8.08.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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睚 눈초리 애, 眦 흘길 자, 必 반드시 필, 報 갚을 보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83

이 성어는 《사기》의 범수ㆍ채택열전(范睢ㆍ蔡澤列傳)에 나온다. 하찮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다는 말이다.

옛 일을 잘 기억하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어릴 적에 나를 골려 먹은 애들에 대한 기억이나 사회생활 중에 나를 해치고 앞길을 막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어찌 그리 세세하게 머리에 떠오르는지…, 나도 놀라울 지경이다.
나중에 그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들 중 십중팔구는 뭔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거나 남보다 뒤쳐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러한 그들을 볼 때면, 고소하달까 뭐 그런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인지상정일까? 속 좁은 놈의 모습일까?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당신, 지금 쪼잔한 것 알아요? 등치는 커 가지고…. 좀 잊어 버리셔 이! 그리고 당신도 정말 다른 사람에게 죄 지은 거 하나도 없어요? 또 다른 사람의 덕도 보면서 살아왔잖아요. 이제 잊을 건 잊고, 풀 거 있으면 빨리 풀고, 그리고…, 갚을 거 있으면 갚아가며 살아요. 얼마 안남은 인생인데.”
  
중국 전국시대 말, 위(魏) 출신 유세가인 범수(范睢)가 위의 고관인 수가(須賈)의 가신으로 있을 때 수가를 따라 제에 사신으로 갔다. 제 왕이 범수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수가를 젖혀두고 범수를 융숭하게 하므로, 질투가 난 수가가 기밀을 누설하였다고 모해하여 당시 위의 재상이었던 위제(魏齊)에게 고발하였다. 위제로부터 갖은 고문을 받아 거의 초주검에 이르렀으나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와 정안평(鄭安平)을 찾았다. 나중에 진의 알자(謁者, 왕의 공문 전달)인 왕계(王稽)의 도움을 받아 장록(張祿)으로 이름을 바꾸어 정안평과 함께 진으로 도망쳤다. 진 소왕이 범수의 비범함을 알고 마침내 범수의 계책을 받아들이며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범수가 재상이 되자 그를 처음으로 왕을 만나게 해준 왕계가 승진청탁을 하므로 하동태수로 임명되게 하였고, 정안평도 장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다시 자기 집 재산을 뿌려서 일찍이 곤궁했을 때에 진 신세를 모두 갚았다. 그때 한 끼의 밥을 대접받았더라도 반드시 이를 갚았다.
한편, 범수가 진의 재상이 되었으나 이름을 장록으로 바꾸었으므로 위에서는 장록이 범수인줄을 꿈에도 몰랐다. 수고가 사신으로 왔을 때 장록이 일부러 옷을 남루하게 입고 혼자 숙사로 수고를 찾아갔다. 수고가 바로 범수를 알아보고 곤궁하게 지내고 있음을 가련하게 생각하여 명주 두루마기를 꺼내주었다. 나중에 범수가 재상이 된 사실을 알게 된 수고가 바로 웃통을 벋은 채 머리를 조아리며 죽을죄를 지었다며 거듭거듭 사죄하였다. 범수가 성대한 연회를 베풀면서 각국 사신들 앞에서 수고의 죄상을 열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에게 명주 두루마기를 주면서 옛 정을 못 잊어 하는 태도가 있었기에 용서해 주겠소. 다만, 나를 죽도록 팬 위제의 목을 당장 가지고 오지 않으면 위의 대량(大梁)을 짓밟을 것이오.”
위제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바로 조나라 평원군에게 의탁하였다. 진 소왕이 평원군을 진에 초청하여 놓고 위제를 내놓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협박하였다.
결국 조 왕이 위제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위제가 가까스로 도망쳐 위 신릉군을 찾았다. 그러나 신릉군이 주저하는 것을 알게 된 위제가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범수는 개인의 이득을 위해 조국을 배신한 사람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사랑과 증오가 분명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래서  사마천은 이러한 범수의 태도를 ‘은수분명(恩讎分明)’ 즉, ‘은혜와 원수를 분명히 하였다.’고 말하면서 ‘옛 원한을 반드시 갚았을 뿐만 아니라(一飯之德必償), 눈 한 번 흘긴 원한도 반드시 앙갚음을 했다(睚眦之怨必報)’라고 표현하였다.
훗날 사람들은 ‘눈 한 번 흘긴 정도의 사소한 원한도 반드시 보복한다.’며 소인의 태도를 이르는 말 즉 도량이 극히 좁은 사람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하였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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